쇼토쿠 태자는 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며, 견수사 파견은 큰 업적 중 하나다.
견수사란 일본이 수(현재의 중국)와 관계를 맺기 위해 보낸 사절단을 말하며, 목적은 주로 다음 2가지였다.
1.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수의 문화·제도를 받아들인다
2. 수와 대등한 관계를 맺고, 한반도의 나라들(신라·백제·고구려)에 대응한다
약 100년 만의 외교 사절단이었던 1차 견수사(600년)는 처신 등에 문제가 있어 수나라에서 상대해 주지 않아 실패로 끝난다.
다만 1번 목적은 일정 성과를 가져왔고, 앞서 말한 ‘관위12계’와 ‘17조 헌법’ 제정에도 반영됐다.
대외적 체면도 갖춘 607년에 대표 오노노 이모코 등을 2차 견수사로 파견하며, 수의 황제 양제에게 다음과 같은 국서를 보냈다.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올립니다.”
이 내용에 양제는 수와 동격인 ‘천자’로 일본이 표현한 점, ‘해 지는 곳=쇠퇴’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고구려와 교전 중이던 수는 더 이상 적을 늘리지 않기 위해, 사신 배세청을 동행시켜 귀로까지 정중히 대했다.
이렇게 일본은 수와의 국교 수립에 성공했고, 이것이 쇼토쿠 태자의 의도대로였다고도 한다.